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깜빡

含閒 2008. 11. 12. 15:40

'깜 빡'




신경질적으로 설거지 그릇을 던지는 듯한 아내의 뒷모습과
TV 리모콘을 들고 안절부절하며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남편의 모습.
그 위로 자막이 하나 뜨면 전후 사정이 명확해집니다.
‘아내의 생일을 깜빡했어요‘

요즘 그 리얼함과 공감적 상황으로 많은 남편들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는 TV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남편들의 생각처럼 단순히 한 번 깜빡했다는 이유로
그런 냉랭한 상황이 연출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생애 최초의 어떤 기억을 떠올린 이들은
그 기억이 가장 강렬했기 때문에 자신의 첫기억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와 다릅니다.
본인은 잘 모를 가능성이 있지만,
살아오면서 자신의 첫기억을 강화시킬만한 행동들이 지속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첫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깜빡의 매커니즘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히 기억력과 관련된 질병 수준의 문제가 있지 않은 한
거의 대부분의 ‘깜빡’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그런 뿌리를 외면한 채 누군가의 투정으로 치부하거나
‘단순히 한 번 깜빡한 것뿐인데’ 수준의 인식을 고집할 경우
그에 상응한 심리적 대가를 치를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