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이론(書法理論)

서예감상론

含閒 2008. 8. 27. 08:23

송하경님의 글을 모셔왔습니다.

 

서예감상론
- 송 하 경 -

1. 서예 감상은 재창조 ․ 재평가의 과정

예술감상 : 일종의 審美활동
예술작품 : 예술가의 창작 성과이자 감상의 대상.
서예작품 속에는 서예가의 예술적 수양이 집중적으로 体現되어 있다. 그러므로 감상자의 심미 활동 또한 작품상의 線條와 形象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재창조 :  感受 기초 상에서의 想象활동과 체험활동이라 할 수 있다. 감상자는 일정한 서예기초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재창조 활동은 감사자의 主觀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서예의 재창조는 기타 다른 예술형식과 다르다. (소설은 자기의 생활경험에 근거하여 소설 속의 묘사와 현장, 인물의 모습등을 생각해 낸다. 회화역시 묘사한 情況․人物 등으로부터 무한한 연상을 이끌어 낸다. 음악은 감상자의 각종 정서적 체험을 이끌어낸다.) 서예는 客觀物体와 人物의 모습을 체현해 낼 수 없으며, 생활현장의 연상은 직접 이르켜 주기 어렵다. 다만 어느 정도 상에서는 음악에 접근한다고 할 수 있다.
 서예․창조의 근거는 고도로 추상화된 문자이다. 문자의 선조자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예를 들면 印刷體 文字에서 문장이 표현코자 하는 내용만 있을 뿐이며, 그들 인쇄체에는 어떤 격동하는 감정을 일으켜낼 수 없다. 그러므로 서예는 서예가가 그들 문자에 강렬한 感情을 부여한 후에야 이루어진다.
 문자의 線條는 일정한 莭律에 의해 운행된다. 선조의 莭律은 서예가의 性格․氣質에 따라 流暢하기도 하고 遲緩 혹은 약동, 격렬한 勢를 이루게 된다. 이에 서로 다른 감상자는 각기 다른 세를 이루고 있는 작품 속에서 자기의 莭律과 함께 共振하는 기쁨을 체험하고, 감상자의 情感이 이동되어 감상자가 보다 새로운 경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니 이는 일종의 心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意境)
 서예의 재창조란 결코 그 문자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서예는 문자의 附庸이 아니다. 그러므로 서예 작품 중의 문자가 일으키는 “(?)想”이나 “再創造”는 서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서예감상의 재창조 중에서 어떠한 精(?)이 출현하는 것. 예를 들면, 筆劃이 뛰어나고, 氣勢가 호방한 작품 속에서 高山 혹은 靑松의 형상을 연상하거나, 비단이 나부끼는 듯 飛動하는 문자를 보거나 山泉의 流水, 혹은 波濤가 넘실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書藝의 “再評價”란 결코 單線的 ․ 一元的으로 進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要素에 의해 동일한 작가, 동일한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여러 갈래로 이루어 지게 되며 여기에는 學術的인 탐구가 보다 요청되고 있다. 아래와 같이 몇가지 예를 들 수 있다.
⑴ 예술은 과학적인 定律과는 달라 일정한 公式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예술은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同一한 文字를 千人의 서예가가 쓴다 할지라도 千人千面千色으로 표현될 수 있다.
⑵ 감상자의 審美斍이 다르므로, 그 심미관은 매개개의 언어 나이, 성격, 학식, 수양, 기호, 지역, 환경 등과 관계가 있다. 一千 동일한 작품을 감상할지라도 一千의 다른
⑶ 예술적으로 분명하게 가름하기 어려운 상황이 적지 않다. 서예적 표현이 때로는 약간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그 효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豪와 野, 奇와 恎, 厚와 笨, 逸과 滑, 骨과 (?), 寬 과 肥등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⑷ 작가가 처한 자의의 차이로 같은 작품일지라도 부동한 평가가 나타날 수 있다. 심하면 동일한 작품에 대한 동일인의 감상일지라도 그 전 ․ 후 감상의 평가가 다를 수도 있다.

2. 서예감상의 세가지 방법
 
 구체적인 서예 감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즉 감상방법의 문제이다. 이것은 어느 손기술처럼 몇 개월만에 습득할 수 없는 것도 아니요. 視上대대로 전수되는 어떤 視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과학적 지식처럼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예감상은 다른 예술의 감상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直視性을 필요로 한다. 감상자는 충부한 학문적 지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서예미에 대한 직각적 感受能力이 있어야 한다. 서예미에 대한 직각은 어떠한 과학적 분석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서예작품의 우열을 파악해 내는 것인데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심미안의 훈련을 거치고서야 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천적인 소질도 함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서예작품에 대한 심미활동은 작품에 대한 전체적 斍照活動이다. 서예작품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어느 기계처럼 해체할 수 없다. 작품의 技巧, 社會性, 歷史的 내용등은 鑑賞으로 통하는 橋(?) 역할만을 하여 줄 뿐 강상의 中心은 되지 못한다. 감상의 중심은 역시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의미, 또는 暗示性, 또는 作用등은 파악하는 데 있다.

⑴ 遠觀 : 적당하게 먼 거리에서 바라봄

 우리는 우수한 서예작품을 대할 때, 먼저 전체적인 感銘을 느껴야 한다. 全體的인 감상을 상실하면, 部分的인 “美”마져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전체를 파악하고자 하면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配置, 意味등은 모두 일정한 공간적 거리가 유지될 때 파악될 수 있다. 어떤 작품은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한글자 한글자의 筆劃이나 結体가 그리 나쁘지 않고 나름대로 功力도 들어 있으나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합창단이 노래를 부를 때 매 개개인의 음성이 맑고 아름다우면서도 화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와 같다. 서예작품의 전체미는 문자의 내용과 외적형식에서 그리고 그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 조화를 이루어 낼 때 돋보인다. 작품을 멀리서 바라 보아야만 작품 속의 제반요소들이 유기체적 조화,통일되었는가를 감식해 낼 수 있다.

⑵ 圓識 : 넓고 원만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함
 
  서예는 단순하면서도 복잡다단하다. 單純하기로는, 黑과 白의 布置와 線條의 施律로 끝나지만, 그러나 여러면에서 바라보면 매우 복잡한 構造를 갖고 있다. 한 작품에 대한 이해․감상을 여러 방면에 걸친 지식과 경험을 빌여야 그 감상의 영역이 확대된다. 圓識이란 바로 광범위한 역사적 ․ 사회적 지식과 각종 인생의 經驗, 그리고 인접 예술에 대한 이해의 次元이 수반되어야 더 좋은 감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서예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류 사회생활의 산물이기에 印(?), 經濟, 文化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곧 문학, 철학, 역사, 종교, 윤리등과 같은 각종 의식형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관계는 헤아릴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예는 기타 학문, 즉 문학적 감정학 심리학 생리학 민속학 민족학에서부터 文房四宝와 그 발전역사에 이르기까지 관계가 있다. 이와같은 여러 方面에 대한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질 때 서예 작품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심오한 의미와 예술적 啓示를 읽어낼 수 있다.

⑶ 活參 : 살아 움직이는 심(?)의 參與活動
 
 사람이란 물직적 수요 외에도 자신의 감정, 욕망, 및 일체의 경험과 느낌 등을 속시원히 排泄하는 생리적 심리적 활동이 요구된다. 예술이란 바로 이들 요구를 발산하기 위한 수단이요 형식이기도 하다. 서예 역시 여러 예술 형식과 활동 중에서 사람의 감정과 心(?)을 가장 잘 吐露, 發散하는 예술수단 중의 하나이다. 작품 속에 간직되어 있는 이를 감정과 심령의 표현은 예술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心(?)에 의한 視照活動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다. 즉 감상자의 心(?)에 의해 작가의 心(?)이 파악될 수 있는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다. 서예감상은 지성, 이성, 추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서예의 오묘한 곳을 파악해 내자면 遠斍, 圓識과 함께 活參이 요구된다. 活參이란 서예 감상중에 외부의 어떤 撹亂도 받지 않고 精神을 온통 작품에 心醉하는 중에 감상자의 心(?)이 작품 속의 心(?)世界를 홀연히 깨우쳐 내는 활동이다. 이러하여 일반 작품의 외형적 형식이나 이지적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을 趣越하여 인생에 대한 형이상학적 깨달은을 얻어 마음으로만 逍遙하는 정신적 자유의 경계 속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3. 서예감상에 수반되는 구체적 활동

⑴ 차분하다고 안정된 주의집중
⑵ 전체로부터 부분으로
⑶ 많은 원작의 감상
⑷ 많은 작품들의 상호 비교 품평
⑸ 다양하고 많은 遊覽활동
⑹ 많은 讀書
⑺ 서예창작의 직접실천

4. 서예감상의 내용

⑴ 神采 :  작품상에 나타나는 정신적 생명의 빛으로 일종의 神氣라 할 수 있다. 宋의 소동파는 「書必有神 ․ 氣 ․ 骨 ․ 肉 ․ 血五者, 缺-不成爲書也」라 하였다. 여기에서의 “血”은 주로 用墨을 가리키는 것으로, 枯濕濃(?)의 처리가 적당한가를 말하며 “骨”은 用筆의 提按과 轉折이 일정한 힘의 정도에 이르렀는가를 말하여, “肉”은 필획중의 圓潤 ․ 豊滿정도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骨 ․ 肉 ․ 血만으로는 생명력 있는 작품이 될 수 없다. 李世民(唐太宗)은 「夫以學爲精魂 神若不和則學無態度」라 하였는데, 여기에서의 신은 창작자의 生命의 표현, 또는 감상자의 심리상태가 표현되어 나오는 것을 가리킨다.
“神”은 곧 서예작품 상의 각종 요소가 신화의 경지에 도달하여 셩식과 내용이 완미한 결합에 도달한 것을 가리킨다.

⑵ 氣韻 : 氣韻生動을 가리킨다. 기운은 서예의 생명선이며 서예가와 감상자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높은 차원의 것이다. 「氣」는 서예작품 속에서 우주와 관통하는 渾融의 氣, 즉 우주와 작가를 관통하는 생명선으로 좋은 작품은 선조가 비록 연결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일종의 운동감이 충만되어 있어 서로 돌고 돌아 생명력을 느끼게 해 준다.
「韻」은 線律, 莭奏로 주체가 서예의 창작과 감상을 통하여 느끼게 되는 선조에 대한 莭奏的 感受이다. 작품상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거리낌없는 분圍氣와 조화로운 생명의 율동, 剛柔를 통해 표현된다.

⑶意境 : 근대의 저명한 학자 王國維는 「境界, 非独謂景物也」, 喜怒哀樂, 亦人心中之一境界. 故能鶴眞景物眞感情者 謂之有境界」라 하였다. 그는 心境과 景物은 모두 경계 속에 포함시켰다. 우리는 이를 빌려 서예미에 대한 탐색에 사용하여 意境을 말할 수 있다.
「意」란 주체적인 사람의 心境이며 「境」은 서예가 표현해 내고 있는 정서, 격조이다. 예를 들면 奔放, 獷逸(거침과 자유로움), 豪壯, (?)强, 端莊, 沈 着, 淳厚, 稚拙, 奇古, 險峻, 跌矿(자유분방), 妎美, 柔(?), 高遠 (?)酒, 敍和, 寬博등과 같은 것으로, 이들은 모두 서예의 경계에 속하며 王國維말한 객관적 景物의 境이 아니라 그것들은 모두 주체와 객체와의 결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서예의 미학적 특징을 결정한다. 서예는 객관세계를 재현하는 예술이 아니라 주관적 정신세계로 표현해 내는 예술이다.

⑷ 風格 :  풍격은 곧 사람이다. 원래 사람의 風度, 品格을 가리키나, 문예작품을 토론하는데로 확추오디어 예술가가 창작속에 표현해 내는 예술특색과 창작개성을 가리킨다. 서예가는 개인의 유전적 구조, 생활경력, 예술소양, 개성적 특징이 다름으로 인해 (?)체의 선택, 표현기법, 서예를 구사하는 언어등 여러방면에서 자기의 특색을 간직하게 되며 이러한 데서 타자와 다른 風格을 이루어 낸다. 이러한 풍격은 성격, 이상, 학식 등에따라 달리 표현되어 (?)(?)역시 감상자의 여러 조건들로 인해 각기 달리 감상할 수 있다.

5. 서예형식의 기본적 規律

⑴ 章法 : 墨向, 虛實, 疏密등
⑵ 用筆 : 疾澁(빠르고, 유창하지 못함), 提按, 輕重, 轉折, 中側(?)등
⑶ 筆劃 : 方圓, 組細, 伸縮
⑷ 結體 : 違和, 正(?), 向拜등
⑸ 用墨 : 濃(?), 乾濕, 沈浮등

6. 書藝水準을 提高시킬 수 있는 要素
 
 일찍이 어느 서예가는 서예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요점을 觀, 臨, 養(숙련 ․ 함양), 悟, 創등 5가지 방면으로 개괄한 바 있다. 斍과 臨은 서예기능 훈련의 기본 내용이며, 養과 悟는 서예탐색과정 중의 인식과 그 축적이다. 斍察하지도 않고 臨도 않으면 서예표현의 기본적인 방법, 즉 필묵표현의 기교를 숙달할 수 없으며 함양하지도, 깨닫지도 못하면 예술적 향상 발전과 새로운 개척을 이루어 낼 수 없다. 이들의 과정은 모두 창조적 경지를 일구어 내기위한 것이다.

⑴ 古人은 거울 삼고, 現今人과 外國人은 배워야 한다.
⑵ 높은 경지의 전문 서예가로부터의 자문과 민간인 서예가로부터 학습
⑶ 문화수양의 축적 - 讀萬卷書, 竹萬里路(董其昌)
                     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杜甫)
⑷ 풍부한 생활경험
⑸ 人格修養 - 書(?)其人(인품은 곧 서품)

7. 書畵의 稚俗
 
 1922년 중국의 화가 진순량은 「문인화의 가치」라는 저서에서 중국 회화의 가장 우수한 전통은 문인화의 전통이며, 그 근거로 문인화는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 회화의 형식을 이용하여 內心의 세계를 袁達하는 일종의 예술형식이라는 점을 내세웠으며 따라서 (?)(?)技巧만을 중시하는 쟁이(匠)의 그림과는 결코 다르다고 하였다.
 진순량의 문인화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별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전통사상에 순응해 오던 문인화가 20세기에 이르러 그 생명이 거의 滅畵되어 가는 지경에 이르고, 바로 이런 즈음 다시 그 정신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진순량은 당시 유럽의 화단을 둘러보고 중국의 문인화가 많은 현대적 요소와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로부터 문인화의 발전을 꾀함과 동시에 침체에 빠진 중국화에 대해 일장의 혁명을 大喝하였다.
 그 실 중국화의 진정한 혁명은 진순량이 출생하기 300여년전 이미 그 가능성과 前非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중국 산수화의 전통 중에서 과거 가장 강조되었던 것은 독서는 회와공부의 가장 기본이 훈련이며 그리고 철학적 의미가 가장 충부한 문인화는 그 출생부터 문인이 되기 위한 준비단계라는 것이다. 문인화는 문인들에 의해 발전되고 성숙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산수화의 전통중에서 화가들의 일상적인 독서의 다소에 따라 문인화의 발전 내지는 그  화품의 稚俗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
 17세기 초 李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繪事 必須多讀書 讀書多  見古今事變多 不狎狹少見問 自然胸次(?)徹 山川(?)奇透入性地 (?)一酒落 何患不臻妙境? 子贍(東坡) (?) 大大略, 終(?)讀書 論天下事(元?)章(米(?))  經日奇奇石古物 (?)可(文同)亦 博雅嗜古 工作篆隸 非(?)(?)繪者」
(그림 그리는 일에는 반드시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독서가 많으면 고금의 사변을 많이 보게 되어 견문이 많아져 胸(?)가 자연히 환하게 트이고 산천의 奧妙함이 성품 바탕에 베어들어 일시에 마음이 상쾌하고 거리낌이 없어지게 될 것임으로 어찌(?)境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소동파는 글씨(그림)가 웅대하고 대강을 잡았는데 종일토록 독서하고 종일토록 도를 논하며 천하의 일을 논하였기 때문이다. 미불은 종일토록 奇石과 古物을 즐기고, 文同역시 학식을 넓혀 인격을 연마하고 골동을 즐기며 전서와 예서르 ftjT다. 결코 그림 그리는 일에만 부지런히 연습한 사람들은 아니다.)

 1679년 처음 간행된 이래 수백년간 그 간행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介子園畵譜>초집에 去俗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筆墨間 寧有稚氣 毋有滯氣 寧有覇氣 毋有市氣 滯則不生 市則多俗 俗尤不可侵染 去俗無他法 多讀書則 書卷之氣 上升 市俗之氣 下降矣」
(글씨나 그림 사이에 차라리 稚氣(어리석은 기운)가 있을지언정 소화가 되지 않아 엉기는 듯한 기운(滯氣)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차라리 씩씩하고 힘찬 야망의 기운(覇氣)이 있을지언정 시장바닥의 장사기운(市氣)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엉기면 생동감이 없고, 시장의 장사꾼 기운이 있으면 속된 것이니 더욱이 속기에 물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속기를 제거하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독서를 많이 하면 책을 읽은 기운이 상승하고 시장바닥의 속기가 내려가게 될 것이다.)
서화의 稚俗의 문제는 필경 독서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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