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音樂)

드보르작 교향곡9번 '신세계'

含閒 2007. 12. 16. 17:19

지독한 향수병 걸린 드보르자크

파격적 연봉에 끌려 뉴욕에 갔지만
고향 그리며 교향곡 9번 `신세계` 작곡

◆클래식은 내친구 (20)◆

지휘자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이끌고 `신세계`를 연주하고 있다.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1841~1904)의 마지막 교향곡 9번 `신세계`는 미국에서 작곡됐다.

신대륙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담은 작품이지만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흑인 영가와 아메리칸 인디언 민요가 간간이 녹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헤미안 정취가 가득하다. 이 곡에선 제2악장이 가장 유명하다. 바다 건너 고국땅을 추억하는 잉글리시 호른 선율을 듣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흐를 것 같다. 지독한 향수병에 걸린 작곡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듯하다. 그런데 유럽에서 잘 나가던 드보르자크는 왜 대서양을 건너가 마음고생을 했을까. 바로 유명세 때문이다. 그의 명성이 미국에 알려져 새로 설립된 뉴욕 국립음악원의 초대원장으로 초청받게 된 것.

연봉도 파격적이었다. 그가 체코에서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의 3배에 달했다. 생계 걱정은 없었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서는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액수였다.

게다가 대우도 좋았다.하루에 3시간만 가르치면 되고, 1년에 4개월의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처음에 망설이던 그는 아끼던 제자가 동행하기로 하자 제안을 승낙했다. 18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광활한 땅에 놀랐다. 그리고 흑인과 인디언에 대한 무자비한 인종차별에 경악했다. 게르만족에게 오랜 세월 탄압 당한 체코인으로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낯선 땅에 염증을 느낄 무렵 체코계 이민자들의 마을에서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결국 3년밖에 못 버티고 1895년 프라하로 돌아왔다.

이때 작곡한 현악 4중주 13번과 14번은 고향의 품에 안긴 기쁨을 노래했다. 귀향한 후 일도 잘 풀렸다.1901년 프라하음악원장이 되고, 오스트리아 상원의원에 임명되며 음악가로서 최고 영예를 누렸다. 푸줏간 집 아들로서는 엄청난 출세를 한 셈이다.

가난한 작곡가였던 그가 성공한 데는 브람스의 도움이 컸다. 젊은 시절 드보르자크가 오스트리아 문화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작품을 제출하자 당시 심사위원이던 브람스가 그의 비범함에 주목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써주었다. 이때부터 브람스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밀어준다. 악보를 출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휘자나 연주자들에게 그의 작품을 초연하도록 권했다.

멋있는 친구가 보내 준 동영상 첨부합니다. 잘 감상하시길...
 
581-dvorak-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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