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에서 왼쪽으로 ‘XO뿐’, 딱 세 글자를 빠르게 썼습니다. ‘기사년(1989) 초여름 광주 데모 때 그날, 서귀소옹’, 제발은 이렇습니다. 서예에서 알파벳을 만날 줄도, ‘데모’라는 외래어를 보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그날’ 두 글자에 사연이 있습니다. 김찬호 경희대 교수에 따르면 소암은 1980년 5월 목포 소묵회를 지도하고 광주에 갔습니다. 5·18의 참혹한 현장을 본 게지요.
그리고 9년 뒤 5월, 여든 두 살의 서예가는 잊을 수 없던 그때의 한탄을 종이에 옮겼습니다. 마른 붓 들어 친 가위표에 붓털이 그대로 곤두서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간할 수 없는 세상, ‘오 아니면 엑스, 중간은 없다, 당신은 어느 편이냐’ 몰아세우던 시대에 대한 울분이 담겼을까요
[출처: 중앙일보] [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 XO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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