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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길

含閒 2018. 5. 13. 13:00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는 경고이냐? 트럼프 대통령에게 하는 경고이냐?

하여간 잘 듣고 실수하지 마시라

 

[중앙시평]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길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2차대전의 형세가 연합국 쪽으로 기운 1943년 1월, 윌리엄 불리트 순회대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두툼한 비밀 보고서를 제출했다. 전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구상하던 루스벨트가 러시아 전문가 불리트에게 자문한 것이었다.
 
그의 보고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비관했다. 불리트는 공산주의 국가와의 협력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며 특히 스탈린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한편이 되었지만, 러시아는 곧 자유 세계를 위협하리라 전망했다.
 
불리트는 원래 러시아에 호의적이었다. 1933년 초대 러시아 주재 대사로 부임하자, 공산주의에 너그러운 루스벨트의 뜻을 따라, ‘내정 불간섭’을 표방했다. 그러나 일상화된 고문과 처형으로 모두 공포에 질린 러시아의 실상을 보자, 공산주의의 사악함을 깨달았다.
 
불리트는 스탈린이 줄곧 국제 사회의 신의를 배신하고 미국과의 약속을 깨뜨려 왔음을 지적했다.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어 2차대전이 일어나는 단초를 제공했고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으며 발틱 3국까지 병합했다는 사실을 들면서, 스탈린은 깨뜨리기 위해 약속을 한다고 평가했다.
 
불리트가 보고를 마치자, 루스벨트는 보고서에 담긴 사실들이 정확하고 논리가 옳다는 것을 선뜻 인정했다. 그래도 자신은 스탈린과의 관계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밝혔다. “만일 내가 스탈린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주고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의무(noblesse oblige)가 있으니, 그는 아무것도 병합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세계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뚝심 있는 불리트는 바로 반론을 폈다. “각하께서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의무’를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노퍼크 공작이 아니라 코카서스의 도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무엇을 거저 얻으면 상대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불리트가 언급한 노퍼크 공작은 영국의 수위 공작으로 영국 귀족을 대표한다. 그래서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의무’가 어울리는 사람으로 거명한 것이다. ‘코카서스의 도둑’은 물론 스탈린이 코카서스 출신임을 가리킨 것이다.
 
스탈린도 천성은 사악하지 않다는 환상을 품었고 자신의 매력으로 스탈린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졌던 루스벨트는 불리트의 조언을 물리쳤다. 그는 스탈린을 ‘조 아저씨(Uncle Joe)’라고 부르면서 친근한 이웃 아저씨의 심상을 퍼뜨렸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킨 독재자를 자유 국가의 시민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이 어리석고 위험한 작업에 언론 기관들과 영화사들이 기꺼이 동참했다. 러시아 비밀경찰 NKVD를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비기는 기사까지 실렸고, ‘타임’지는 스탈린을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루스벨트는 많은 러시아 첩자들을 믿고 썼다. 공산주의자로서 러시아 첩자라는 의심을 받는 앨저 히스를 경계하라는 충고를 여러 번 들었지만, 그는 “왜 공산주의자가 나쁘냐?”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그런 첩자들은 미국의 정책을 러시아에 유리하도록 유도했고 미국의 협상 전략을 러시아 정보기관에 알렸다. 그렇게 해서, 스탈린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은 ‘얄타 협정’이 나왔다. 반면에 루스벨트는 스탈린 앞에서 ‘인권’이란 말을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악명 높은 이 협정에서 가장 문제적인 조항은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배상으로 독일인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도록 한 조항이다. 국무부가 그런 조치는 ‘노예 노동’이어서 인도주의와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항의 전문을 보냈지만, 루스벨트는 끝내 스탈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러시아를 탈출했거나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협력한 러시아인들을 모두 러시아로 강제송환을 하도록 한 조항이다. 러시아로 송환되면 모두 위태롭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루스벨트는 그것을 허락했다. 결국 송환된 200만의 러시아인들이 곧바로 처형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루스벨트도 이 일만은 부끄러웠던지, 그것을 규정한 ‘비밀 추가조항(secret codicil)’은 루스벨트의 서류함에 봉인되었다가 50년 뒤에야 공개되었다.  
     
영국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외부경계조건’이 가장 비슷한 역사적 사건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처지에서 외부경계조건이 가장 비슷한 것은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스스로 농락당한 사건이다.
 
반어적으로,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은 루스벨트 자신이 남겼다. 얄타에서 돌아온 지 달포 만에, 그는 측근에게 고백했다, “우리는 스탈린하고 일할 수 없어. 그는 얄타에서 한 약속들을 모두 깨뜨렸어.”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한 달 뒤 그는 병사했다. 나치 독일보다 훨씬 위협적인 공산주의 러시아의 출현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남기고.
 
믿지 못할 자를 믿어야 될 때도 있다. 그래도 상대가 믿지 못할 자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먼저 자신에게 속은 사람만이 상대에게 속는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