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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그럼 일본은 현명한가

含閒 2013. 11. 22. 11:22

(김세형 칼럼) 그럼 일본은 현명한가

 

기사입력 2013.11.20 17:40:20 | 최종수정 2013.11.20 17: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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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업보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히틀러가 2차 대전 때 프랑스의 항복을 받는 장면을 살펴보는 게 적절하다. 히틀러는 1940년 6월 21일 오후 3시 15분 프랑스 육군원수 앙리 페탱을 파리 북쪽 80㎞ 지점 콩피뉴 숲으로 나오라 했다. 그곳은 22년 전 1차 대전 때 연합국 프랑스에 항복한 바로 그 지점, 그 철도 그 객차를 끌고와 항복문서에 사인을 하라 했다. 페탱의 애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히틀러의 표정엔 원한이 서려 있었다(제이미 추아 지음 `제국의 미래`).

아베 신조의 통치는 지난 20여 년간 무기력했던 일본인들의 혼을 흔들어 깨워 놓고 있다. 미국의 재정악화를 이용해 일본 재무장에 관한 굳건한 지지를 얻어내고 영국, 호주 등도 일본 편으로 돌고 있다. 한국으로선 난처한 현실이다. 일본 주식시장은 모처럼 세계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고 경제는 꿈틀거린다. 아베의 국내 지지율은 70%를 넘나든다. 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국가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게임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다." 일본 월간지 주간문춘이 아베가 했다고 보도한 말이다. 한국의 외교장관을 간신이라 칭한 모욕도 있었다.

일본은 아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아베는 올여름 731번이 새겨진 전투기 조종석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등번호 96번이 새겨진 셔츠를 입고 야구 시구를 했다. 만주에서 잔악한 인간 생체실험을 한 731부대, 그리고 일본 재무장을 금지한 헌법 96조를 암시했다. 한ㆍ중 양국이 비난하자 그런 뜻이 아니라 둘러댔다. 공자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전에 그 사람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는데, 이젠 그 말을 듣고도 행동을 살피게 됐다,`(논어 5편 公冶長)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가 뉘엿하는데 4강 중 한ㆍ일 정상회담만 이뤄지지 않자 아베는 한일협력위(委)에 나와 정상회담을 재촉했다. 초대 회장이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임을 강조했다. 한ㆍ일관계에 노력하는 족보를 말하려 했음이리라. 기시 전 총리는 대표적 전범인 도조 히데키의 최측근으로 만주국에서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고 1955년 자민당 체제를 만든 장본인이다. 현재 일본 측 회장인 아소 다로 전 외상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가장 매파다. 아베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으로 대표적인 존왕파(尊王派)며 아베 본인의 이름 신조(晉三)도 쇼인의 수제자 다카스기 신사쿠(晉作)에서 따온 것이다. 아베는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후쿠자와 유키치를 흠모한다. 그는 탈아론(脫亞論)의 주창자다. 걸핏하면 중국인ㆍ한국인을 개ㆍ돼지에 비유하고 침략을 그냥 접수해서 문명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고마워해야 한다는 사상을 `문명론의 개략`에서 퍼뜨렸다. 최고액 1만엔권의 초상이 그 인물이다.

아베는 한국 국회의원들 앞에서 아시아의 새 질서에서 양국의 협력, 한ㆍ미ㆍ일 3국의 긴밀한 공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중국 포위전략에 한국을 압박하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고 그 너머로 미국의 곤혹스러운 표정이 있다.

아베의 양국 공조론은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속으론 한국의 급소를 찌르겠다 하고 겉으론 웃는 척한다면 무엇이 되겠는가. 유사 이래로 포용력, 관용을 갖지 못한 국가는 쓰러졌다. 히틀러의 침략 초기 스탈린의 학정을 못 견딘 소련인들, 위성국, 심지어 프랑스까지 그를 환영했다. 그런데 히틀러와 일본은 2차 대전 때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 후 독일은 이웃 나라들이 "이제 그만 미안해하세요"라고 할 때까지 배상하고 또 배상하고 사과했다. 아베는 현시점에서 잠깐 흥행되는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순 있다.
아주 잠깐 말이다. 그런데 그는 온통 이웃 국민들의 영혼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고 있다. 콩피뉴의 숲을 보는가. 기나긴 역사로 보면 무서운 언행이다. 아베는 누가 어리석은지 스스로 물어보라.

[김세형 매일경제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