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산 100(韓國名山)

[스크랩] 서해천하를 호령하는 산, 가야산

含閒 2010. 9. 6. 15:40

서해천하를 호령하는 산, 가야산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에서 뻗어나와 금강 이북 지방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금북 정맥이 서해로 빠져 세력을 다하기 전, 남은 힘을 쏟아 예산과 서산 사이에 빚은 산이 가야산(677m)이다. 비록 높이 600m급이지만, 서해 가까운 내포평야에 우뚝 솟았기 때문에 상대적 해발고도가 높아 보인다. 이 내포지방 고을 들을 대부분 거침없이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전당대인 것이다.


백두대간 칠현산에서 분기한 금북정맥의 산답게 당찬 힘을 발휘한다. 가야산에서 석문봉까지 암릉을 형성한 후 두 줄기로 나뉘어 일락산과 옥양봉, 수정봉을 향해 갈래 친다. 가야산은 봄이면 아기자기한 암봉 곳곳에 피어있는 연분홍 진달래가 곱고, 여름에는 녹음이 좋고, 가을이면 단풍과 억새풀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축제가 있는 한 겨울에는 능선 곳곳의 설경이 아름답다. 무엇보다도 사시사철 암봉과 능선에서의 조망이 아주 빼어나다는 게 큰 매력이다. 


가야산 최고봉인 가사봉은 충남의 해안에 솟은 산 중 오서산 다음으로 높은 곳으로 옛날 중국을 오가는 뱃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여러 통신 중계소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 석문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가야산이라는 산 이름을 비롯하게 한 가야사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 말기까지는 규모가 제법 큰 절이었다 한다. 젊은 시절 안동김씨의 세도에 밀린 야심가 흥선군 이하응은 가야사 금탑 자리가 2대에 걸쳐서 왕손이 나온다는 대명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불을 질러 절을 태운 뒤 금탑을 허문 자리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썼다. 7년 후 흥선군은 차남 명복을 얻었고,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 이다. 결국 그는 대원군이 되어 국정을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야산 자락에는 사방 곳곳에 백제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이어진 문화재가 산자락마다 있다. 가야산 서쪽으로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품고 있는 고풍스런 해미읍성이 자릴 꿰차고 있으며 북쪽에는 보물 143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는 개심사가 있다. 북동쪽 자락에는 조선시대의 명지관인 정만인이 점지한 남원군묘와 육관대사로 알려진 풍수지리도사인 손석우의 묘가 있다. 그뿐만 아니다. 남쪽에는 충남 서북부를 대표하는 1500여년 된 역사를 자랑하는 백제시대의 수덕사가 명성을 떨치고 있다.


가야산은 코스에 따라서 서너 시간이면 산행을 끝낼 수 있다. 상가리에서 석문봉을 거쳐 가야산에 오른 다음 원점회귀 하는 산행이 가장 일반적이다. 또는 석문봉에서 서산 산수리로 내려가는 횡단 코스도 많이 이용되는데 가야산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종주산행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45번 국도에서 직접 금북정맥을 타거나 한티고개, 한서대학교에서 오른 다음 가야산, 석문봉을 거쳐 일락산이나 옥양봉을 올랐다가 하산할 수 있다. 주릉이 10킬로미터 정도 된다. 주릉 어디에 서나 서해 벌판과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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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산림청 대표 블로그 "푸르미의 산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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