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산 100(韓國名山)

[스크랩] 암릉을 오르내리니 깨달음의 길이더라 - 도락산

含閒 2010. 9. 6. 15:07

[한국의 명산 100](42) 충북 단양 도락산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에 있는 해발 964m의 도락산(道樂山)은 소백산과 월악산 중간쯤에 있는 바위산이다. 일부가 월악산국립공원의 끝머리에 포함돼 있다. 충북 단양 도락산은 병풍처럼 펼쳐진 암봉과 전해져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 다양한 문화유적, 단양팔경 등 주변의 관광지로 유명하다.


도락산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인품을 음미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암 선생이 이름을 지었다는 도락산은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도락산 정상에는 넓은 바위와 바위 연못이 있다. 숫처녀가 물을 퍼내면 금방 소나기가 쏟아져서 다시 물이 채워진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능선에는 신선봉·채운봉·검봉·형봉 등 암봉이 성벽같이 둘러져 있다. 널따란 암반에 직경 1m 정도 웅덩이 같이 파여 있는 신선봉은 도락산에서 전망이 제일인 곳이다. 이곳에 서면 황정산·수리봉·문수봉·용두산 등이 펼쳐진다.

 

도락산은 등산뿐 아니라 단양팔경 중 사인암, 상·중·하선암 등 4개의 절경이 인접해 있어 관광을 겸한 산행지로 제격이다. 산의 상부엔 독락산성과 광덕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역사·문화적인 운치를 더한다. 독락산성은 해발 749m에서 926m 사이에 있다. 삼국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보이며 성의 둘레는 4㎞에 수천명이 머물 수 있는 큰 성으로 알려져 있다. 성 밑에는 석문에서 솟아나는 작은 샘이 있는데 위장병을 치유해 주는 약수라 해서 천수천약수라고 불린다. 도락산을 올라가다 보면 광덕암이 있다. 1950년쯤 비구니 김경임 스님이 창건했다. 지대는 높지만 절 경내는 평탄하고 넓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경내는 약 1정(3000평)으로 지형은 연화부지라 해 법당을 중심으로 후면 좌우에 산신각, 칠성각과 전면 좌우에 요사동 5동이 있다. 사찰 뒤편 도락산의 정상에는 평탄한 암석이 있는데 신선이 하강했다 해서 신선암이라 불리고 있다.도락산 주변 30분 거리 이내에는 유명 관광지가 많다. 단양팔경을 비롯해 고수동굴 등 3개 동굴과 온달산성, 적성비, 선사유적지와 소백산·월악산국립공원, 충주호유람, 단양유황온천 등 머물면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관광지가 주변에 산재해 있다.

 

도락산 산행의 기점은 상선암휴게소. 이미 해발 300m에서 시작된다. 경관이 좋고 암릉을 오르내리는 재미 또한 각별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산행 경험이 풍부한 안내자와 함께 가는 것이 좋다. 눈이 올 경우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일단 산에 들어가면 식수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등산 시기는 가을, 여름, 봄 순으로 좋다. 상선암휴게소에서 상금교를 건너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상선암에 닿게 된다. 이 절 오른쪽 아래의 샘터에서 수통에 물을 채워야 한다, 지능선길 초입부터 가파른 급경사길로 올라서면 능선마루에 이르고 상선암 쪽이 내려다보인다. 이곳부터가 암릉길이다. 암릉 코스 좌우로는 곳곳에 소나무가 바위 사이로 뿌리를 내려 ‘자연이 만든 분재’를 감상하는 것도 일품이다.

 

제봉(弟峰·900m)에서 남쪽 형봉(兄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도 흥미롭다. 온통 바위로 뒤덮이고 무성한 숲길을 따라가면 형봉이 나온다. 형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검봉, 왼쪽으로 들어서면 넓다란 암반, 신선봉이 나온다. 암반 아래로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아찔하다. 도락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참나무 군락으로 뒤덮여 있어 시원하지 않다. 상선암휴게소~상선암~상선상봉~능선분기점~정상~능선분기점~검봉~상선암휴게소까지 산행거리는 7.8㎞, 약 4시간30분이 소요된다. 주변에 잠자리와 먹거리가 많지만 인근의 소선암자연휴양림에서 휴식을 취해 볼 만하다. 6~15명이 숙박할 수 있는 휴양림을 5만~15만원에 빌릴 수 있다. 7~8월, 공휴일은 이용요금의 30%를 할인해 준다.

 

고려말 전설 서린 곳…후세에 '성골'로 불러

 

도락산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연관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고려가 망할 무렵 도락산 절골에는 짚신을 삼아 팔아서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짚신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산 아래 동네에서 이인(異人)으로 소문난 그는 이따금 마음이 내키면 명당자리를 잡아주곤 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이 난을 피해 미복(微服) 차림으로 도락산을 찾았다. 왕은 짚신 할아버지의 집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청했다. 짚신 할아버지는 얼른 안으로 들이고 할머니에게 손님대접을 하게 산 아래 박 서방에게 가서 쌀 한 말을 꾸어 오도록 했다. 그러나 얼마 후 할머니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박 서방이 쌀을 꾸어주지 못하겠다고 해 그냥 왔다는 것이다. 짚신 할아버지는 이 소리를 듣고 허허 웃더니 "그 사람 벼 오십 섬은 할 수 있는 집터를 잡아줬더니 쌀 한 말을 꾸어주기 싫어하다니…" 하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왕이 “그렇게 풍수를 잘 아는 사람이 왜 짚신만 삼고 있소”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짚신 할아버지는 "내가 사는 이 집터는 돈도 권세도 없고 알아주지 않는 집터에 불과하지만 궁궐이 될 터입니다. 오늘밤 임금님께서 하루를 머무르고 가실 테니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깜짝 놀라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 했더니 도락산 정상에 모여 있는 빛과 대왕의 그 인자하신 모습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결국 왕은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으니 짚신 할아버지의 풍수지리가 맞아떨어졌고 초라하던 집은 행궁이 된 셈이다. 그후 할아버지는 아무리 가난해도 왕의 마음으로 한 세상을 살았다 한다. 왕은 그 자리에 성을 쌓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곳을 성골이라 불렀다.

 

출처 : 경향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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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산림청 대표 블로그 "푸르미의 산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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