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인왕산둘레길,안산 자락길(2018년 4월 15일 봄소풍)
京橋莊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벨기에 출신 신부 매우사에게 전달한 태극기
梅雨絲 神父의게 付托하오 당신은 우리의 光復운동을 誠心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行次에 어느 곧에서나 우리 韓人
을 맛나는 대로 以下幾句의 말을 傳하여주시요 亡國의 설음을 免하려거든 自由와 幸福을 누리려거든
精力 人力 物力을 光復軍에 밫어서 强弩末勢인 원수 日本을 打倒하고 祖國의 獨立을 完成하자
一九四一年 三月 十六日 重京에서 金九 謹贈
인왕산 둘레길에서
은행나무 보호수(수령 460년)
權慄 도원수 집터
딜쿠샤
앨버트 테일러 가옥 ( Dilkusha )
요약 3·1 운동을 외국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가 살았던 미국식 주택의 이름.
딜쿠샤(Dilkusha)는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건물의 이름이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인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가 부인 메리 테일러(Mary Taylor)와 함께 살던 집으로 ‘앨버트 테일러 가옥’이라고도 부른다.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직접 지은 이름으로 힌두어로 ‘이상향’ 혹은 ‘행복한 마음, 기쁨’을 의미한다. 그는 1923년 딜쿠샤를 짓고 1942년 추방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딜쿠샤는 붉은색 벽돌로 지은 지하 1층~2층 건물로 총면적은 624㎡ 정도다. 서양식 주택 중에서도 구성과 외관이 독특한 편으로 일제강점기 건축 양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화강석 기저부 위로 붉은 벽돌을 세워 교차하면서 쌓은 것이 특징으로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방식으로 평가된다.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그는 조선에서 금광과 무역 사업을 하던 기업가로, 미국의 통신사인 UPI(United Press International)의 서울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무렵 테일러는 한국 민족대표 33명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입수했으며, 동생을 통해 몰래 독립선언서를 외국으로 보내 보도했다.
홍파동 언덕배기에 2층의 아담한 적벽돌 건물이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 홍난파가 생의 마지막 6년을 보낸 집이다. 공연장과 전시실을 겸한다. 독립운동과 친일로 이어진 한 예술가의 궤적이다. 그러므로 사실 그대로의 지난 역사를 기억한다. 창가에는 봉선화가 붉다.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라
안산 자락길
발 아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보인다.
바라는 바 이루어지길...
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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