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그대여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
부처로부터 흘러내린 불(佛)의 등불이 2천년 동안 꺼지지 않고 활화산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해동(海東)의 우리나라. 그것을 자각했을 때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내가 곧 부처’라는 명제야말로 팔만의 대장경을 단숨에 불태워 버릴 수 있는 진리의 불쏘시개일 것이다. 이제 경허도 없고 부처도 없다. 책을 덮으면 내가 읽던 모든 내용들이 무(無)로 돌아가듯 한 권의 소설을 끝내면 그것은 이미 내게 있어 죽어 버린 과거가 되어 버린다.
선의 검객 임제는 말... 더보기
길 없는 길. 1: 거문고의 비밀 최인호 장편소설
3판
책소개
『길 없는 길』제1권. 위대한 인간 부처, 그리고 한없이 매력적인 사람 경허, 구한말 한국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와 만공 선사를 축으로 1천6백년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오는 한국 불교의 장명등을 오늘에 다시 밝혀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내가 곧 부처'라는 진리를 만나게 해주는 이 시대의 대장경! 최인호 문학 50년이 그려낸 삶의 기억과 무늬들!
저자소개
목차
거문고의 비밀
대발심
내 마음의 왕국
대발심
내 마음의 왕국
책 속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그대여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
부처로부터 흘러내린 불(佛)의 등불이 2천년 동안 꺼지지 않고 활화산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해동(海東)의 우리나라. 그것을 자각했을 때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내가 곧 부처’라는 명제야말로 팔만의 대장경을 단숨에 불태워 버릴 수 있는 진리의 불쏘시개일 것이다. 이제 경허도 없고 부처도 없다. 책을 덮으면 내가 읽던 모든 내용들이 무(無)로 돌아가듯 한 권의 소설을 끝내면 그것은 이미 내게 있어 죽어 버린 과거가 되어 버린다.
선의 검객 임제는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게 있어 죽여야 할 부처도 없고 경허도 없다. 처음부터 없었던 경허를 찾아 헤매었나니 부처를 만난 적도 없고 경허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디에서 죽여야 할 부처를 애써 찾고 어디에서 죽여야 할 경허를 따로 찾을 것인가?
그렇다. 경허야말로 나다. 내가 곧 경허인 것이다.
살아도 온몸으로 살고
죽어도 온몸으로 죽어라
경허의 얼굴은 핏자국이 낭자하였고 상처투성이였다. 상처는 계속 새로이 생겨나 새로 흘러내린 핏물이 이미 괴어 있던 핏자국을 내리덮어 경허의 얼굴은 귀신의 형국이었다.
경허는 그 송곳을 얼굴 아래 턱밑에 받쳐들고 앉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깜박하여 턱이 끄덕거리면 끝이 뾰족한 날카로운 송곳은 여지없이 얼굴을 찌르고 턱밑을 찌르도록 되어 있었다. 벌써 수십 차례 송곳은 얼굴을 꿰찌르고 턱밑을 꿰뚫어 그곳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온통 얼굴과 턱을 흘러내려 그토록 처참한 귀신의 형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경허의 처참한 형국은 이러한 단어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송곳으로 스스로를 찌른다(引錐自刺).’
그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사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 벌거숭이가 되어 경허는 법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어머니 박씨를 향해 정면으로 마주섰다. 그는 일부러 불알을 어머니에게 자랑이나 하듯 드러내보이면서 마침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어머니, 저를 좀 보십시오.”
모여든 대중들도 경악하였을 뿐 아니라 그중 제일 놀란 것은 어머니 박씨였다. 박씨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또한 어머니인 자신을 위해 법문을 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므로 고운 옷을 차려입고 법석 제일 앞자리에 나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마침내 참다못한 어머니 박씨는 낯을 붉히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별 발칙한 짓도 다 보겠구나.” 그리고는 법회장을 빠져 나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이 해괴한 짓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그들은 젊은 나이에도 도를 이뤄 법왕(法王)이 된 경허를 보기 위해 불원천리하고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대여 높이 서려면 산꼭대기에 서고
깊이 가려면 바다 밑으로 가라
지난 수년 동안 나는 줄곧 경허의 행적을 좇으면서 지내왔다. 경허는 낮이나 밤이나 그 어디에서나, 심지어 꿈속에서까지도 내 마음을 지배하던 화두였었다. 경허는 내가 먹는 밥이었으며, 내가 꾸는 꿈이었으며, 내가 보는 사물이었으며, 내가 입는 옷이었으며, 내 머리 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던 생각이었다.
나는 단 한순간도 경허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경허의 입을 빌려 말을 하고 경허의 눈을 빌려 사물을 보고, 경허의 손을 빌려 사물을 만지고, 경허의 마음을 빌려 생각하고, 경허의 잠을 빌려 꿈을 꾸었다. 경허가 웃으면 나도 웃었으며 경허가 울면 나도 울었다. 경허가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냈으며, 경허가 술을 마시면 나도 술을 마셨다.
경허가 길을 떠나면 나 또한 길을 떠났다.
나는 경허의 그림자였으며 경허 또한 나의 그림자였다. 닫기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
부처로부터 흘러내린 불(佛)의 등불이 2천년 동안 꺼지지 않고 활화산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해동(海東)의 우리나라. 그것을 자각했을 때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내가 곧 부처’라는 명제야말로 팔만의 대장경을 단숨에 불태워 버릴 수 있는 진리의 불쏘시개일 것이다. 이제 경허도 없고 부처도 없다. 책을 덮으면 내가 읽던 모든 내용들이 무(無)로 돌아가듯 한 권의 소설을 끝내면 그것은 이미 내게 있어 죽어 버린 과거가 되어 버린다.
선의 검객 임제는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게 있어 죽여야 할 부처도 없고 경허도 없다. 처음부터 없었던 경허를 찾아 헤매었나니 부처를 만난 적도 없고 경허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디에서 죽여야 할 부처를 애써 찾고 어디에서 죽여야 할 경허를 따로 찾을 것인가?
그렇다. 경허야말로 나다. 내가 곧 경허인 것이다.
살아도 온몸으로 살고
죽어도 온몸으로 죽어라
경허의 얼굴은 핏자국이 낭자하였고 상처투성이였다. 상처는 계속 새로이 생겨나 새로 흘러내린 핏물이 이미 괴어 있던 핏자국을 내리덮어 경허의 얼굴은 귀신의 형국이었다.
경허는 그 송곳을 얼굴 아래 턱밑에 받쳐들고 앉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깜박하여 턱이 끄덕거리면 끝이 뾰족한 날카로운 송곳은 여지없이 얼굴을 찌르고 턱밑을 찌르도록 되어 있었다. 벌써 수십 차례 송곳은 얼굴을 꿰찌르고 턱밑을 꿰뚫어 그곳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온통 얼굴과 턱을 흘러내려 그토록 처참한 귀신의 형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경허의 처참한 형국은 이러한 단어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송곳으로 스스로를 찌른다(引錐自刺).’
그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사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 벌거숭이가 되어 경허는 법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어머니 박씨를 향해 정면으로 마주섰다. 그는 일부러 불알을 어머니에게 자랑이나 하듯 드러내보이면서 마침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어머니, 저를 좀 보십시오.”
모여든 대중들도 경악하였을 뿐 아니라 그중 제일 놀란 것은 어머니 박씨였다. 박씨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또한 어머니인 자신을 위해 법문을 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므로 고운 옷을 차려입고 법석 제일 앞자리에 나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마침내 참다못한 어머니 박씨는 낯을 붉히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별 발칙한 짓도 다 보겠구나.” 그리고는 법회장을 빠져 나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이 해괴한 짓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그들은 젊은 나이에도 도를 이뤄 법왕(法王)이 된 경허를 보기 위해 불원천리하고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대여 높이 서려면 산꼭대기에 서고
깊이 가려면 바다 밑으로 가라
지난 수년 동안 나는 줄곧 경허의 행적을 좇으면서 지내왔다. 경허는 낮이나 밤이나 그 어디에서나, 심지어 꿈속에서까지도 내 마음을 지배하던 화두였었다. 경허는 내가 먹는 밥이었으며, 내가 꾸는 꿈이었으며, 내가 보는 사물이었으며, 내가 입는 옷이었으며, 내 머리 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던 생각이었다.
나는 단 한순간도 경허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경허의 입을 빌려 말을 하고 경허의 눈을 빌려 사물을 보고, 경허의 손을 빌려 사물을 만지고, 경허의 마음을 빌려 생각하고, 경허의 잠을 빌려 꿈을 꾸었다. 경허가 웃으면 나도 웃었으며 경허가 울면 나도 울었다. 경허가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냈으며, 경허가 술을 마시면 나도 술을 마셨다.
경허가 길을 떠나면 나 또한 길을 떠났다.
나는 경허의 그림자였으며 경허 또한 나의 그림자였다. 닫기
출판사 서평
길 없는 길
한국 현대문학의 한 획을 그으며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최인호.
그가 혼을 지펴 살려낸 한국 불교의 산역사가 담긴 작품으로,
이 시대의 ‘대장경’이라는 찬사를 받는 《길 없는 길》 개정판 발간!
위대한 인간 부처, 그리고 한없이 매력적인 사람 경허,
구한말 한국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와 만공 선사를 축으로
1천6백년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오는
한국 불교의 장명등을 오늘에 다시 밝혀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한국 현대문학의 한 획을 그으며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최인호.
그가 혼을 지펴 살려낸 한국 불교의 산역사가 담긴 작품으로,
이 시대의 ‘대장경’이라는 찬사를 받는 《길 없는 길》 개정판 발간!
위대한 인간 부처, 그리고 한없이 매력적인 사람 경허,
구한말 한국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와 만공 선사를 축으로
1천6백년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오는
한국 불교의 장명등을 오늘에 다시 밝혀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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