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讀書後)

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含閒 2010. 2. 4. 09:05
저자
권비영 지음
출판사
다산책방
2009-12-14 출간 | ISBN 10-8963700348 , ISBN 13-9788963700342 | 판형 B6 | 페이지수 360
최저가
11,800  10,620(10%) , 1,060원 적립(10%)
 

책소개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을 다룬 최초의 소설!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외롭게 생을 마감했던 덕혜옹주에 대한 소설『덕혜옹주』. 고종황제의 막내딸,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렸던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철저히 정치적 희생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를 여성 작가 특유의 세밀한 필체로 그려내었다.

어린 나이에 고종황제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일본으로 끌려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십대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10년간의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진다. 그 치욕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녀를 붙들었던 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터전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은 해방 후에 그녀를 찾지 않는데….

☞ 북소믈리에 한마디!
 

저자소개

저자 권비영
95년 신라문학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고 ‘한국문인협회’, ‘소설21세기회원’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005년에 창작집 <그 겨울의 우화>를 발표했다.

작가 한마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녀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그 이름에 걸맞게 살지 못했던 여자. 조국과 운명을 함께했지만 종국엔 철저히 버려졌던 여자. 온몸이 아플 정도로 그리움을 품고 살았던 여자의 이야기. 역사서로도, 인문서로도, 소설로도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일본 번역서가 한 권 있을 뿐입니다.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것은 그녀를 위한 진혼곡입니다.”

 

목차

프롤로그_ 두 여인

1부 그곳에 이름 없는 황녀가 살고 있었다

유령의 시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가|괴이한 소문|비밀을 함께 나눈 이|폭풍이 몰려오고 있다|심연|떠도는 자들|인연|그리운 사람들|이름의 대가

2부 한겨울에 피는 꽃들

조선 유학생|떨어지는 꽃잎처럼|또 다른 죽음|그림자 사나이|누구도 원치 않았지만|화선지 속에 감춘 것|그날의 신부는

3부 말하라, 이 여자는 누구인가

불행한 만남|해빙|두려운 날들|사라지는 자와 태어나는 자|정혜 혹은 마사에|악몽|살아야 하는 이유|흔들리는 시간들|곁에 아무도 없다|

4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요코와 사끼코|꼭 한 번은 마주쳐야 했던|탈출할 수 있을까|해향에 얽힌 마음|마지막 시도|
에필로그_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도 나는 조선의 황녀였다.

미디어 서평

출판사 서평

“내 가장 큰 죄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핏줄로 태어난 것입니다”
조국과 일본이 모두 버렸던 망국의 황녀,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을 다룬 최초의 소설!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외롭게 생을 마감했던 덕혜옹주에 대한 최초 소설. 고종황제의 막내딸,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렸던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철저히 정치적 희생자로 살아가게 된다. 어린 나이에 고종황제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일본으로 끌려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십대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10년 이상의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진다. 그 치욕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녀를 붙들었던 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터전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은 해방 후에 그녀를 찾지 않는다.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권력층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황족들을 외면했고, 덕혜옹주는 국적도 없이 오랑캐의 땅에서 유령처럼 떠돌았다. 결국 37년이 지나서야 그녀는 쓸쓸히 조국 땅을 밟는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총기가 돌 때마다 이런 글을 남겼다는 그녀는,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체념했지만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대한민국 우리나라”를 잊지 못했다.
한때 모두가 외면했고, 지금은 누구도 기억 못하는 여인. 조국에 돌아온 후에도 조국을 그리워한 여인. 이제는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가 여성 작가 특유의 세밀한 필체와 만나 먹먹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덕혜옹주에 대한 실제 증언


1.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나를 매료시켰던 생기발랄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말로 인사했으나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한국말로 "먼 여행 오시느라 피곤하신가봐요?" 했으나 옹주는 미소조차 띄지 않았다. - 이방자 여사의 말
2. 덕혜옹주는 매일 마호병(보온병)을 들고 학교에 왔다. '왜 보온병을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덕혜옹주는 독살당하지 않으려고 보온병의 물만 마신다고 대답했다. - 일본 학습원 동료의 말
3. 가을 학기가 시작했으나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종일 누워 있고 먹지도 않고 때로 밤에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 뒷문으로 해서 오카사카 방면으로 걸어가고 하는 일도 있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어 정신과 진료를 받게 했다. 의사는 '조발성치매증(정신분열증)이라고 했다. - 이방자 여사의 말
4. 감옥과도 같이 음산한 공기가 떠돌며 중환자가 있는 병실은 마치 감방 모양 쇠창살로 들창을 막고 있었다. 안내해주는 간호부의 뒤를 따라갔는데 한 병실 앞에서 간호부의 발이 딱 멈추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40여 세의 한 중년 부인이 앉아 있는데 창백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보는데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 부인이 바로 덕혜의 후신인 것이다.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여러 해 동안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옹주를 생각하니 어찌나 가엾고 불쌍한 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만일 고종황제가 이 광경을 보신다면 얼마나 슬퍼했을까. - 김을한의 말
5. 김을한은 박정희를 만나 덕혜옹주 이야기를 청한다. 박정희가 물었다."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인가요?" "조선의 마지막 왕녀입니다." - 김을한의 말
6. 빨리 깨어나세요. 이대로는 너무나도 일생이 슬퍼요. - 이방자 여사의 말

“나는 누구입니까? 내가 정녕 조선의 황녀입니까?”

늘 마음을 편케 가져라. 마음을 편히 가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세상이 잘 보일 것이다… 정녕 그러한 줄 알았습니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세상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1912년 5월, 주권을 잃어버린 나라에 이름 없는 황녀가 태어난다. 폐위 당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핏줄을 지켜낼 수 없었다.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나 일본의 방해공작으로 이름조차 받지 못했던 옹주. 결국 5년 만에 황적에 오르고 그 후 4년 만에 ‘덕혜’라는 이름을 갖게 되지만, 그 대가로 조국에 다시는 발을 디딜 수 없게 된다.
모든 날개를 꺾인 채 독살 당한 아버지(고종), 일본의 입김에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오빠들(순종, 영친왕) 틈에서 그녀는 망국의 황족들이 얼마나 참담하게 삶을 연명해야 하는지 온몸으로 깨닫는다. ‘조선 최후의 황족’이라는 상징성이 자신에게 가할 일들을 아주 어릴 때부터 예감한다.
결국 열세 살 때 일본으로 끌려간 덕혜옹주는 모든 조선인과의 접촉 금지, 자유로운 외출 금지, 조선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죄다 금지 당한 채 철저한 무력감과 자책감, 외로움과 홀로 싸운다. 그녀는 원수의 땅에서 한갓 ‘조센징’이었을 뿐이었고, 일본의 황녀 앞에서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받는 식민지의 민족일 뿐이었다.
일본은 철저하게 그녀를 무너뜨린다. 사랑하는 정인과 인연을 끊고 강제로 일본남자의 아내가 되었다가 종국엔 ‘미친 여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수용된 그녀.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것은 “조국은 날 잊지 않을 것이다”는 믿음이었다. 해방 된 조국이 조선황족들의 귀환을 막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그녀는 그 외로운 믿음에 기대 10년 이상이나 지속된 감금생활을 견딘다. 그리고 일본으로 끌려온 지 37년 만에 마침내 조국 땅을 밟는다. 하지만 켜켜이 쌓인 절망과 슬픔과 그리움이 너무 컸던 탓일까, 이미 정신을 놓아버린 그녀는 자신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유모를 보고서도 눈을 맞추지 못한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가끔씩 총기가 돌아올 때마다 쓰곤 했다는 글. 과연 그녀에게 조국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을 보호해주지도 못했고, 자신이 보호해줄 수도 없었던 거대한 애증의 대상을 그녀는 한평생 무슨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그녀가 살아생전 미처 다하지 못했던 말들이 이제야 처연한 문장으로 피어난다.

“그때 울음을 참지 않았던 자 누구인가!”
피울음을 삼키면서 살아남아라, 그리하면 그 나라가 살아나리라.

저자는 덕혜옹주뿐 아니라 망국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모든 이들 ―황제와 황족들, 청년들, 여자들과 아이들― 의 울분과 고통을 생생하게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소설 속 어느 누구도 나라 잃은 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종, 영친왕, 의친왕 같은 황족뿐 아니라 그들의 아래에 있었던 민초들도 스러져가는 나라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개인의 안위를 도모하다가도 나라의 현실 앞에서 주춤거리고 흔들린다. 수없이 고민하고 울부짖는다.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필요에 의해 움직이면서도 역사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이 친다. 황폐한 땅에서, 잿빛 현실 속에서 짓밟혀도 일어서고 다시 짓밟히고 다시 일어서는 그들의 모습은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을 한층 부각시키는 한편 잡초처럼 피어나는 삶에 대한 희망과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나라의 역사란, 개인들의 삶이란, 그렇게 비극과 희망의 틈바구니에서 흐르는 것임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허구와 상상력의 절묘한 합작품”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미덕이다. 정설을 헤치지 않으면서 그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허구적인 상상력을 가미시켰다. 디테일하지 않은 일화에 색을 덧입히고, 한 줄로 요약된 문장에 희로애락을 입혔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눈물 흘리고 또다시 구절구절을 되새기게 하는 이유다. 가장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야기의 기본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장점일 것이다.

책속으로

…… 고종은 고개를 들어 경운궁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 조선 왕가의 마지막 핏줄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그 어린 것의 운명이 가여웠다. 망국의 옹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 아니었다. -24쪽

……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놀이는 하고 싶지 않아.” 그러자 그들 중 하나가 발끈한 목소리로 외쳤다. “놀이일 뿐인데 도꾸에히메는 그런 것도 하지 않고 인형처럼 살아온 모야이야!” 덕혜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 그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눈에 담긴 경멸과 마주했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매일 그런 눈빛과 마주쳐야 하다는 게 못내 힘겨웠다.- 150쪽

…… “이제 난 조선으로 돌아갈 거란다. 그때 너와 꼭 함께 갈 거란다.” 덕혜의 간절한 말에 정혜는 고개를 저으며 당돌하게 대꾸했다. “일본이 망했는데 조선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는 정말 정신이 이상해진 거예요.” 그 누가 가슴에 칼을 꽂는다 해도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까. 그곳에 정혜는 없었다. -326쪽

…… 그처럼 옛 인연들을 의식에서 몰아내지 않았다면 옹주는 여태 살아 있지도 못했으리라. 옹주가 갈구하는 것들은 침묵 속에서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소리 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밝히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다 종내는 자신이 무엇을 갈구했는지조차 잊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398쪽

…… “유모, 내 아버지는 어찌 되셨느냐?” “돌아가셨나이다.” 유모가 울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덕혜가 슬픈 얼굴로 또다시 물었다. “어머니는 어찌 되셨느냐?” “돌아가셨나이다, 마마. 그리운 이들은 모두 사라졌나이다.” “내가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함이 있었더냐.” “아니옵니다.” “옹주의 위엄을 잃은 적이 있었더냐.” “그렇지 않았나이다, 마마.” 유모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 -402쪽

 

덕혜옹주
 본문
덕혜옹주가 태어난 것은 우연히도 고종의 회갑 해인 1912년 5월 25일이다. 속담에 ‘회갑 해에 태어난 자녀는 그 어버이를 똑같이 닮는다.’는 말이 그대로 적중하여, 덕혜옹주는 아바마마 고종의 축소판같이 닮았다. 바로 그 전 해에 엄비를 잃고 울적하던 차에 덕혜옹주의 탄생이 노왕 고종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안겨 주었는가는 실록에 나타난 바로도 짐작할 수 있다. 아기를 낳자마자 즉시 그 산모 양씨에게 ‘복녕당’이란 당호가 내려지고, 그 다음날 왕이 산실에 아기를 보러 갔고, 3일째 되는 날에는 흥친왕을 비롯한 종친들이 덕수궁으로 달려와서 문안을 드리고, 다시 생후 일주일 되는 날에는 종척(宗戚:임금의 친족과 외척)들의 알현이 있었다. 그 다음날 6월 1일에는 순종 내외가 덕수궁에 부왕을 뵈러 와서 함께 산실인 복녕당으로 아기를 보러 갔다. 삼칠일 되는 날에는 종척 이하 칙임관 이상 직급에게도 왕이 축하의 내연을 베풀었고, 생후 약 2개월 후인 7월 12일에는 아예 아기를 유모를 딸려 침전인 함녕전으로 옮겼다. 실록에 나타난 바로는 왕녀가 태어나서 이토록 환영받은 전례가 없다.